[뉴스동포나루 인물인터뷰⑨-오산, 권태형 더인력대표(현, 오산시도서관 키움봉사회연합회장)]
본지 인터뷰⑨는 지난 달 30일 오산시 오산동에 위치한 더인력 권태형대표를 만나 진행했다. 권태형대표는 현 오산시도서관 키움봉사회연합회장이다. 그가 오산지역사회에서의 봉사를 하게 된 계기나 오산과의 인연이 깊은 만큼 그의 '오산사랑' 역시도 대단하다. 그의 삶을 들어본다.
권태형 키움봉사회장은 더인력 대표이자 오산시 중앙도서관을 비롯하여 9개 도서관에서 활동하고 있는 키움봉사회 연합회장이다.
오산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첫 직장은 서울 무역센터 현대백화점에서 시작을 했지만 오산과의 인연을 시작으로 제2의 고향이 된 것 같다.
오산에서 사업을 하시던 매형사업을 같이 하게 되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오산으로 오게 됐다. 현재의 인력회사를 하기 전에 오산에서 처음에는 매형이 하시는 렉커업체 일을 했었다. 불법주차대행업차 견인차회사 '오산렉커'가 있었는데 막내매형이 하시던 사업이고 그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것 보다는 오산에 내려와서 그 사업을 하도록 추천했다.
오산에 내려와 보니 기사분들이 나이가 제법 있으셨다. 렉커차 사업 초기에는 내 나이가 어리다보니, 나이가 있으신 분들이 계신 상태에서 그분들과 융화된 생활을 하려고 꽤 노력했다.
90년도에 내려와서 일을 하고 97년도에 매형한테 사업인수를 하였다. 이후 불법주차대행업 사업이 차를 끌고 가면 민원이 발생하다보니 아이는 커가고 있고 하여 사업의 한계를 느끼게 되면서 자동차정비공장(자동차정비서비스) 사업을 하였다.
사실은 좀 더 보태자면 자식의 영향이 좀 컸다. 이유인즉, 렉커사업이 좀 험한 사업이고 하다보니 아이에게 험한 일을 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자동차정비서비스는 사고난 차가 들어오면 수리해 주는 정비서비스인거라서 좀 나은 편이었다.
어릴때 가족에 대한 깊은 인상으로 남은 것이 있다면 말해 달라. 나는 서울태생으로 화목한 가정의 부모님 밑에서 6남매 중 막내로 사회에 진출할 때까지 무난한 삶을 살았던 것 같다. 그는 지금은 작고하신 부모님 충주분이신 아버지와 서울분이신 어머니와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편이다. 아버지께서 서울 신림동에서 농협창고를 하셨었다. 부유한 집안였던 거다. 예전엔 사기를 당하는 일이 많았다. 안좋은 일을 겪으시기도 했다.
아버지께서 인사동에서 서예점을 하신 게 마지막 사업이시다. 서예관련 책도 내셨고 고상하게 나이가 드신 편이다. 원래부터 서예 취미가 있으셔서 방도 따로 있었다. 어릴 때 먹을 가는 게 내 일였다.
권회장은 아버님처럼 서예를 좋아했나? 운동을 했었던 것으로 안다. 얘기해 달라. 나는 작은아버지 영향이 많았는지 손으로 뭘 하는 것보다 발로, 뛰는 것으로 하는게 좋았고 맞았다. 작은아버지께서 럭비를 하셨었다. 나는 매동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테니스를 시작해서 청운중학교에서 테니스부였다. 중3까지 하던 중 양쪽 인대가 나가는 바람에 운동을 접게 되었다. 왜 아픈지도 모른채로 수술도 바로 하질 않았던 상황이다. 당시 안타깝게도 운동을 접었던 이유다.
부인과 아드님 소개
아침에는 내가 워낙 일찍 나오니까 아침밥을 같이 먹기는 힘들지만 저녁은 특별한 약속이 없는 한 가급적 집에 가서 가족들과 함께 먹는다.
자식에 대한 철학 아이에게 싫은 소리를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아이 성격에 따라 키우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겠으나, 아이가 어릴때엔 좀 심약한 편이었다. 자라면서 건장한 체격이 되기도 했지만, 헬스클럽도 다니고 신체단련을 하고 있는데 그런 모습이 부모로서 자신을 잘 관리하고 있는 자식이 고맙기만 하더라.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아이가 체형이 마르고 약한 편이었는데 아이가 괴롭힘을 당하는 듯했는데 속상해서 아이가 학교에 잘 적응할 때까지 학교안에서 뭔가 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 1,2학년때에는 아이 학교 체육진흥회장을 했다. 3학년때엔 아이 학교운영위원장을 했다.
내가 학교를 특별히 찾아가고 그런 것은 없는데 아이가 아빠의 존재감만으로도 든든함을 느꼈던 것 같다. 잘 자라주고 올바르게 커주는 게 고마웠다.
아드님 영후에 대해서 말씀해 달라. 나의 아들이 나의 사회생활을 도운 격이 되었다. 이 친구로 인해서 내가 학교 생활도 하고, 내 아이로 인해서 여러사람을 알게되고, 그로 인해 바깥세상을 알게 되고, 올바르게 커나가면서 주변의 사람들을 더 잘 알게 되고, 아들과 내가 상생, 윈윈하는 계기가 된 거라 본다. 잘 자라주고 속 썩이는 것 없이 올바르게 잘 커주고 있는게 고마울 따름이다.
영후는 인력쪽 직업상담사 자격을 갖고 있다. 내 일을 보조차원 도와주고 있다. 큰 힘이 되고 있다. 아들도 이 일을 맡아서 하게 될 것 같다. 아들이 공무원 시험준비를 하고 있다가 아들이 십자인대 수술을 한 바람에 시험 볼 시기를 놓친셈이 되었다.
나는 평생을 열심히 살아왔고 나쁜짓을 안하고 살아왔다. 나보다 더 나은 부모들의 모습들도 있겠지만 자식에게만큼은 살아갈 수 있는 게 공무원만이 아닌 또 다른 일로도 살 수 있는 게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보람을 갖고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도 아들이 느낄 수 있도록 힘이 되어 주고자 한다.
반려견을 키우고 계시던데 소개해 달라. 아내가 강아지를 키운 지 3년 되었다. 이름이 ‘토마토’이다. 가족간의 대화를 '토마토(반려견)'가 이어준다. 집사람의 건강수호신이 되었다. 매일 산책을 토마토와 같이 한다. 하루에 한번씩 산책을 나가는데 두시간 정도 산책을 시킨다. 우리 가정에 (토마토가)세 살된 아이이지만 우리 가정이 더 행복해지고 심심하지가 않아서 참 좋다. 아내가 인터뷰를 하게 되면 토마토 얘기를 꼭 해달라고 했다.(웃음)
사업에 대한 꿈은 언제부터 가졌나? 인력사무소 사업을 한 특별한 계기가 있나? 어릴때부터 이미 사업은 꼭 한다고 생각했다. 나 개인적 성격이 무척 강한편이라 그랬던 것 같다. 인력사무소 계기는 내 친구의 지인과 우연한 계기로 인연이 되면서 추천을 받게 된 거다. 친구가 장흥에서 관광호텔을 크게 하고 있었는데 해외에서도 일을 했고, 그 친구가 호텔을 인수해서 사업을 확장하게 되면서 좋은 인연이 된 것 같더라. 그 분이 오산에 오시게 되면서 같이 운동도 즐기고 취향이 비슷하고 잘 맞다보니 좋은 인연이 되었다. 그분께서 인력회사를 우연하게 추천을 하셨는데 당시 동탄에도 건설현장들이 많이 남아 있었고 일할 사람들도 많고 하여 인력사무소 운영에 무리가 없었다.
더인력 사업을 운영하면서 어려운점? 더인력을 운영한지는 거의 7년 정도 된것 같다. 건설인력이 수급되기가 쉽지 않다. 중국교포들도 이젠 많지 않다. 지금은 사람이 부족할 정도다. 세상이 인력난으로 허덕이는 상황이다. 노는 사람은 많은데 고용보험을 받고 있는데 일은 하려고 하는 식이다 보니, 정부에서 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니 그런 구직문의를 하는 사람은 철저히 배제하고 법에 맞게 사람들을 찾다보니 일할 사람을 찾는게 어렵다.
그런이유의 연장선이라 할까 지금은 더인력 사업과 병행해서 ‘가호환경’이라는 업체를 창업해서 철거. 청소용업 업체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일용직이라도 일하는 분이나 대표자나 서로 존중하고 내 직원, 내회사로 서로 신뢰를 갖고 할 필요가 있다. 건설현장, 파출(식당일 홀서빙, 주방 등). 데려다 주고 데려오고 할 수 있도록 버스를 준비해서 운영한다.
나의 활동은 철저히 계획과 스케줄을 정해 준수하려고 한다. 약속 이외 시간들은 가족과 함께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무실에는 5시 전에 나와서 일을 시작한다. 직원들이 출력일보 즉, 인력 파견 배치, 일한 곳에서 싸인을 받아오면 일급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오전 7시 정도 되면 출력하는 일이 대략 마무리 된다. 그 이후로는 파출쪽 일을 아들이 도와주면 아들이 배치하게 된다.
봉사할 시간들과 가족들과 보낼 시간, 내 본업을 하는 시간들이 철저히 시간관리 계획하게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오산에 살면서 글로 남기고 싶은 기억을 소개해 달라. 오산에 살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라하면, 그야말로 내 인생에서 오산을 빼면 아무것도 남지않는 것 같다. 왜냐하면 1990년도부터 현재까지 만33년을 살았으니 인생에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겨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내가 "나는 막내아들이지만 결혼 후 2년은 부모님 모시고 살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아내의 뜻에 따라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부모님을 모시고 가족이 함께 살던 때가 가장 그립고 기억에 남는다.
오산시 도서관 키움봉사회 활동들을 알려달라. 오산중앙도서관, 햇살마루도서관, 초평도서관, 꿈두레도서관, 양산도서관, 고현초도서관, 무지개도서관, 양산도서관, 소리울도서관 이렇게 오산에는 9개의 오산시 중앙도서관 관할 도서관이 있다. 이곳 각 도서관마다 소속 키움봉사회가 있고, 9개 도서관 키움봉사회원은 약 600 여 명 가량 된다. 중앙도서관 키움봉사회만 해도 봉사자가 200명 정도 된다. 키움봉사회는 분과별로 운영된다.
키움봉사회 연합회장은 2016년부터 한 것 같다. 자리를 더 확고히 잡을 때까지 그 자리에 있어 달라고 해서 아직은 있지만, 그 자리에 다음 회장이 오셔서 잘 할 수 있도록 여건을 최대한 잘 갖출 생각이다.
키움봉사회연합회장단은 각 도서관키움봉사회 회장들이 모여 구성되어 있다. 각 도서관키움봉사회별 회장들로 분과가 구성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연합회장단의 총무도 8개 도서관중 한 곳의 키움봉사회의 회장인거다.
현재 키움봉사회 회원들께서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는 그야말로 순수한 봉사를 하고 계시다.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이분들에게 그나마 해 줄 수 있는 게 1년에 한 두 번 문화탐방이라든지 선진지 견학 같은 기회를 드리고 있다.
봉사하고 계신 분들이 상당히 전문적 분야까지 하고 있다. 책보수 같은 것도 봉사자분들이 실력있는 분들이 하고 계시다. 박사학위 받은 어르신분들, 자기계발을 위해 지속적으로 책을 보시는 분들 등 전문적 활동을 하신 분들이 많다. 회원 스스로가 알아서 잘 해 주셔서 고맙고 자랑스럽고 보람을 느낀다.
올해의 계획이나 소망 올해도 제가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다. ▲첫째로 도서관 키움봉사회의 연합회장으로서 각 도서관 회장들과 유기적으로 소통하고 궁극적으로는 봉사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둘째로는 오산시도서관 운영위원회 위원장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여 위원들과의 소통및 도서관 행정,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셋째는 크리스토퍼 클사랑 골프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골프회원수 120명의 회원에게 즐거운 여가활동이 될수 있도록 하고, 올해는 안성큐 골프클럽으로 평월10팀을 구성하여 부킹하였고, 회장배는 총30팀 120 명이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하려 한다.
권리와 책임감이 함께해야 한다는 것. 공공질서라든지 신호등 켜있는데 휴대폰보면서 걷는다든지, 길거리에 담배꽁초를 버리고 한다든지, 이런게 정부차원 또는 지자체 차원에서 계몽활동을 해야 할 것 같다. 시민의식이 더 발전되고 실천되길 바란다.
오산시나 시의회에 바라는 점은 나는 오산시의 한사람의 시민으로서 인접된 주변의 화성동탄, 수원, 용인,평택시 등 우리를 둘러싼 인접시에 뒤쳐지지 않는 질좋은 환경의 자립시로 자리잡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윗글에도 말씀드렸듯 행정가, 정치가, 시민모두가 오산발전에는 발벗고 나설수있는 풍토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항간에 떠도는 여러가지 이야기들이있던데, 서로 유리하겠다고 남들 헐뜯고, 비방하고는 하지만 실상 시민들은 어떤 의도로 어떤 얘기를 하는지 다알고 있다. 하나는 못 될지언정 찬물을 끼얹지는 말자는거다. 우리모두 행복한 오산시민이 될수 있도록 정치, 행정가들이 노력해달라. 시민들이 믿고 따를수 있도록 질좋은 오산시를 만들어 달라.
아버지의 부지런함과 아내사랑, 자식사랑과 함께 모범된 가정을 이끌고 서로 사랑으로 뒷받침해 주고, 각자의 위치에서 서두르지 않고 묵묵히 아름다운 삶을 일궈가는 권회장의 가정을 보고 한편의 화사한 그림을 보는 듯 했다.
바쁜 시간 가운데에도 오랜시간 인터뷰에 응해준 권태형 회장에게 감사를 전했다. 또 그의 사업의 번창과 키움봉사회의 아름답고 진한 향기가 오산도서관을 찾는 시민들에게 은은히 퍼져나갈 것을 기대한다는 인사로 기자와의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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