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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나루칼럼)[이종무칼럼] 워라밸과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

뉴스동포나루 | 기사입력 2022/12/13 [00:45]

(동포나루칼럼)[이종무칼럼] 워라밸과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

뉴스동포나루 | 입력 : 2022/12/13 [00:45]

 

[뉴스동포나루 동포나루칼럼]  워라밸과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

 

워라밸은 익숙한데 ‘조용한 사직’이란 말은 처음 들었다.

‘조용한 사직’은 실제로 회사를 그만둔다는 말이 아니라, 회사를 다니면서도 자신이 맡은 최소한의 업무만 처리하는 업무 태도를 뜻한단다. 올해 7월 미국 뉴욕의 자이들 펠린이라는 20대 엔지니어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틱톡에서 사용하면서 유행하였다고 한다. 

 

그는 틱톡의 17초짜리 영상에서 자신이 지금 ‘조용한 사직 중’이라며 “실제로 일을 그만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주어진 일 이상의 노동과 열정을 바라는 ‘허슬(hustle) 문화를 그만두는 것이다. 일은 당신의 삶이 아니다. 당신의 가치는 당신이 하는 일의 결과물로 정의되지 않는다.”라고 설명하여 2030 직장인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퍼져나갔다.

 

갤럽이 올해 9월에 미국인 18세 이상의 근로자 15,000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인 근로자 중 50% 이상이 사실상 조용한 사직 중이라는 것이다. 특히 35세 미만의 회사원들이 일에 대한 열정이나 직장에 대한 기대 없이 그냥 생계 유지를 위해 회사를 다니는 경향이 높은데, 이는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로 MZ세대가 동의하고 주도하는 태도라고 해석된다.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한다는 말은 이제는 익숙한 워라밸이라는 신조어의 뜻이기도 하니 ‘워라밸’과 ‘조용한 사직’은 같은 맥락의 현상이나 가치관을 의미하는 용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내 주변의 젊은 직장인들이 이런 생각과 태도를 가지고 근무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들의 상사들 중에는 일에 대한 열정이 중요한 삶의 가치라고 생각하고 살아온 사람들이 많은데 가치관이 다른 부하 직원들과 함께 일하면서 가치관의 충돌로 갈등을 겪는 경우가 종종 있다. 부하 직원들을 번듯한 일꾼으로 클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하여 상사인 자기도 개인 시간을 희생하며 열심히 일하는데 부하 직원들이 따라오지 않아서 속상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잘난 척하는 경영 전문가들은 “MZ세대에게는 보수나 복지보다 구성원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회사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하는데 이건 가치관의 충돌을 겪고 있는 현실에서 상사의 가치를 직원에게 강요하는 꼰대의 훈계에 불과하다. 회사가 그런 메시지를 줘도 MZ세대가 받지 않는데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21세기라는 역사 시대의 특징 중의 하나인 세대 간의 갈등 양상이 여기에서도 드러난다. 이건 가치관끼리의 충돌이자, ‘일’과 ‘삶’이라는 텍스트에 대한 해석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완전히 다른 두 세계관 중에 ‘더’ 타당한 것은 없다. 두 세계관을 비교하여 평가할 수 있는 공통의 기준이란 게 없기 때문이다.

 

세대 간의 갈등을 당연한 것으로 보는 입장에서라도 갈등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다. 두 진영 간의 해석의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일과 삶이 구분되어 있지 않고 하나라는 입장에서 “삶으로서의 일(One Life)”이라는 책을 쓴 모르텐 알베크도 그런 소통을 위한 철학적 고민을 한 사람이다. 덴마크 철학자이면서 경영자이기도 한 알베크는 워라밸(work life balance)라는 말에 일과 삶이 별개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고 느끼고는 내내 불편한 감정을 간직하게 됐다. 철학은 근본적으로 불편한 질문이기에 철학자가 불편함을 느끼면 치열한 사유로 이어진다.

 

자신이 하는 일에 가치가 없다면 자신의 삶에 가치가 있을까? 일에서 가치를 찾을 수 없다면 일 이외의 어떤 부분에서 삶의 가치를 찾을 수 있을까? 가치는 찾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만들어 나가는 것일까? 의미와 가치가 없는 삶이 행복할 수 있을까?

 

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깨어 있는 대부분의 시간은 일로 채워진다. 자신의 일에서 긍지와 보람을 느낄 수 없다면 일을 하는 게 기쁠리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고역이다. 삶의 대부분이 고역으로 채워진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일까? 이 불행은 주어진 조건일까 아니면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일까? 

 

사실 이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삶이라는 작품은 주어진 조건들을 재료로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이기에 이런 불행은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일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노동으로서의 일과 자기 실현을 위한 일.

 

장자에서 나오는 포정은 소를 잡는 백정인데 19년 동안 수천 마리의 소를 잡으면서도 칼날이 숫돌에 새로 간 것처럼 칼날을 상하지 않고 소를 잡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 비결은 자연의 결을 따라 틈과 틈을 가르고 그 틈 사이로 칼을 넣어 움직이는 데 있는데 이 말을 들은 문혜왕은 감탄하며 “훌륭하도다! 나는 포정의 말을 듣고서 삶을 기르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포정에게 있어 생계를 위한 노동과 자기 실현을 위한 일은 하나였다. 어떤 일이라도 몰입하여 자신의 힘과 정신을 쏟게 되면 그 일에 능숙해지며 가보지 못했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그런 과정에서 힘과 정신은 소진되는 게 아니라 더 길러진다. 눈빛은 형형해지고 자연스럽게 있어도 엄숙한 기운이 깃들기에 사람들이 쉽게 보지 못하고 존중하게 된다.

 

‘공정성’이 MZ세대에게 중요한 가치가 되었기에 열정 페이는 착취가 되고 받는 돈보다 더 많이 일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불공정한 노동 조건에 불과하다. 나에게도 공정성은 중요한 가치이긴 하지만 내 삶의 모든 부분을 지배하는 절대적인 원리는 아니다. 타인을 대할 때 공정해야 하지만 내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 감에 있어서는 공정성이라는 기준에 얽매이지 않으련다. 

 

생계를 위한 일에서 삶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 장자와 같은 고대 설화에서나 나오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노동과 보상이 공정하지 못함을 수용할 수 없기에 직장에서 받는 돈만큼만 일하면서 유유자적하며 스스로 쿨하다고 칭찬하고 만족할 수도 있다. 아니면 삶과 일이 하나이니 내가 하는 일에 몰입하여 내 삶의 가치를 만들고 힘과 정신을 길러 가보지 못한 경지에 도달하려고 노력할 수도 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도저히 그렇게 못하겠다면 과감하게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포기하고 그럴 수 있는 일을 찾을 수도 있다. 그건 당신의 선택이다. 선택을 하면 징징거리지 말고 책임을 지면 된다. 책임의 결과는 내 삶이라는 작품이다. 스스로의 심미안으로 평가하기에 가장 아름답고 멋진 작품을 만들어 나가면 될 일이다. 

 

 

메인사진

▲사진 이종무칼럼니스트(Columnist) 

(현)엔터테인먼트 전문 변호사, 비즈니스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는 문자 중독자, 재야 철학자,

뉴스동포나루 칼럼 1호 칼럼니스트-「이종무칼럼」기고 

 

※ 칼럼니스트(Columnist): 이종무 - 현)엔터테인먼트 전문 변호사, 비즈니스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는 문자 중독자, 재야 철학자, 뉴스동포나루 칼럼 1호 칼럼니스트 「이종무 칼럼」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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