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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나루칼럼)[이종무 칼럼] 김수환과 박재철

뉴스동포나루 | 기사입력 2022/11/16 [22:38]

(동포나루칼럼)[이종무 칼럼] 김수환과 박재철

뉴스동포나루 | 입력 : 2022/11/16 [22:38]

[뉴스동포나루 동포나루칼럼] 「이종무 칼럼」

 

김수환 추기경에게는 열 살 아래의 지인이 있는데 그가 박재철이다. 박재철은 법정 스님의 속명이다. 김수환 추기경은 1969년에 47세의 나이로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세계 최연소 추기경으로 서임되었는데 이전에는 몰라도 그때부터는 지금까지 그보다 어린 나이에 추기경으로 선임된 신부는 없다. 카톨릭 신자는 영세를 받고 신자가 된 후 견진 성사라는 것을 받아야 신자로서 어른 취급을 받고 대부도 될 수 있게 되는데 나는 20년 전인 2002년에 대치동 성당에서 견진을 받았다. 김수환 추기경이 미사를 집전하였는데 그때 그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직접 볼 수 있었다. 김수환 추기경의 강론에 매우 큰 감명을 받았는데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고 다만 그 태도와 자세에서 ‘이 분은 범상치 않은 분이구나. 그런데 위압감이 아니라 참 따뜻하고 편안하다.’라는 느낌을 받았던 게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 70년이 걸렸다’고 한 말에서 받은 감동보다 직접 접했을 때 받은 온기가 더 오래도록 남아 있다. 

 

법정 스님의 경우 그가 지은 ‘무소유’를 포함해서 두어 권의 책을 읽었는데 그 내용 또한 하나도 기억나지 않고 그에 대한 일화 하나만 가슴에 오래도록 남아있다. 법정 스님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후 사람들이 하도 몰려들어 어느 산골의 암자로 피신하여 수도하고 있었다고 한다.

 

한 아줌마 신도 하나가 암자로 찾아와 밤이 되어도 가지 않고 딸 문제를 포함하여 속상한 얘기를 밤이 새도록 하자 시봉하던 스님이 이 보살님을 가게 하려 했지만 법정 스님이 만류하고 묵묵히 그 하소연을 다 들어주었다는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한 아줌마 신도는 후련한 낯빛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속상한 일이 있을 때 누군가 우리 가슴 속 얘기를 섣부른 충고나 지루한 기색 없이 진지하게 끝까지 들어준다면 불행 속에서도 한 가닥 구원을 찾은 심정이 될 것이다. 

 

진영을 갈라 서로를 미워하느라 이성을 잃고 있는 우리 사회에도 존경할 만한 어른들이 많다. 섣부른 화합을 강요하지 않되 침묵 속에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자세를 가르쳐 준다. 종교인들 중에 이런 분들이 많다는 게 어찌 보면 아이러니이다. 우리는 흔히 기독교와 천주교, 불교, 이슬람교가 서로를 배척하고 갈등한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종교 분쟁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서로 싸우다 죽어간 사례들이 많기에 종교는 분열과 갈등의 씨앗 정도로 여겨지고 무신론이 오히려 건강한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뱀이 마신 물은 독이 되고 꽃이 흡수한 물은 꿀이 되듯이 편협한 사람이 믿는 종교는 폭력이 되고 좋은 사람이 믿는 종교는 자비가 되는 것이 아닐까?  

 

종교는 교리와 계율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카렌 암스트롱이라는 수녀 출신 철학자가 “신을 위한 변론”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종교는 실천적 수련이라서 종교적 통찰은 관념적인 사색이 아니라 영성 수련과 헌신적인 삶의 방식으로부터 나온다.” 지금이야 종교 없이도 잘 살고 있지만 옛날의 종교는 우리 삶을 구성하는 방식이었다. 삶은 말에 의하여 많은 영향을 받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일련의 행동들로 이루어져 있다. 삶을 예술 작품에 비유하는 것을 좋아하는 내게 있어 삶을 이루는 행동들은 예술 작품의 소재이자 재료이고 주제이기도 하다.  

 

김수환과 법정을 그들의 말이 아니라 종교적 헌신에 의하여 만들어진 인격이라는 예술 작품으로 접하여 내 마음도 그들과 같은 방향으로 변화하고 싶다. 우리들의 인격이라는 예술 작품을 텍스트가 가득한 산문이 아니라 미술과 음악, 연극이 복합된 총체적 종합 예술 작품으로 생각해 보자.

 

나는 어떤 느낌을 주는 작품일까?  내가 남에게 주는 느낌의 원천은 무엇일까?  좋은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감동받은 부분도 있을 것이고 혐오하는 사람을 뒤에서 욕하고 성낸 얼굴로 싸우면서 얻은 부분도 있을 것이다.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은 내 인격이라는 작품을 바깥의 시선으로 평가해보는 일이기도 하다. 나라는 작품이 초라하고 음울하다면 내가 했던 행동들에 어떤 문제가 있어서 이리라.  

 

그래서 나는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감상하고 유튜브에서 음악을 듣는 것도 좋아하지만 김수환이나 법정과 같이 인격이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들처럼 아름다워지고 싶기 때문이다. 그들과 함께 아름다워지고 싶기 때문이다. 

 

시절이 하 수상하여 말들이 거칠어질수록 함께 아름다울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사진 이종무칼럼니스트(Columnist) 

(현)엔터테인먼트 전문 변호사, 비즈니스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는 문자 중독자, 재야 철학자,

뉴스동포나루 칼럼 1호 칼럼니스트-「이종무칼럼」기고

 

 

※ 칼럼니스트(Columnist): 이종무 - 현)엔터테인먼트 전문 변호사, 비즈니스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는 문자 중독자, 재야 철학자, 뉴스동포나루 칼럼 1호 칼럼니스트 「이종무 칼럼」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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